청해 이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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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
시조 | 이지란(李之蘭) | |
파조 | 이인기(李麟奇) (송계공파) | |
집성촌 | ||
인구 | 12,002명(2000년) | 국내 329위 | |
1. 개요 [편집]
2. 유래 [편집]
시조인 이지란은 여진족으로, 원래 이름은 퉁 쿠란투란티무르이며, 아버지인 아라부카는 지역의 지도자였다. 아버지의 금패천호(金牌千戶)란 관직을 물려받아 이끌다 많은 부하들과 함께 현재의 함경남도 북청군으로 와서 고려로 귀화했다. 이때 동북면의 실력자인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를 만나 의형제의 예를 맺고 수하로 들어갔으며, 성도 여진 성씨인 '퉁'에서 이성계의 성인 '이'로 바꿨다.
이성계가 동북면에 있을 때부터 따랐을 만큼, 조선 개국에도 공이 있어 1등에 책록되고, 이 지명 '청해'를 따 '청해백(靑海伯)'으로 봉해졌다.[1] 1차 왕자의 난에 동의하고, 2차 왕자의 난 때도 이방원 편을 들어서 역시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의형제 태조가 원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권력의 비정함에 느낀게 있었는지 다시 청해로 돌아가 일생을 마감했다.
이지란의 차남 이화영(和英)은 세종 초 판우군부사(判右軍府事)를 지내었고, 7세손 이인기(麟奇)는 선조 때 중추부동지사[2]가 되었다. 역시 같은 부서의 중추부첨지사 이핵,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수민(壽民)도 유명하다.
이성계가 동북면에 있을 때부터 따랐을 만큼, 조선 개국에도 공이 있어 1등에 책록되고, 이 지명 '청해'를 따 '청해백(靑海伯)'으로 봉해졌다.[1] 1차 왕자의 난에 동의하고, 2차 왕자의 난 때도 이방원 편을 들어서 역시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의형제 태조가 원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권력의 비정함에 느낀게 있었는지 다시 청해로 돌아가 일생을 마감했다.
이지란의 차남 이화영(和英)은 세종 초 판우군부사(判右軍府事)를 지내었고, 7세손 이인기(麟奇)는 선조 때 중추부동지사[2]가 되었다. 역시 같은 부서의 중추부첨지사 이핵,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수민(壽民)도 유명하다.
3. 항렬 [편집]
4. 인구 [편집]
2000년 기준으로 인구가 1,2002명으로, 0.0003%였다.
5. 여담 [편집]
- 사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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